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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unning same as Yesterday!!

도랑모티 2014. 2. 25. 23:53

내 안엔 서로 다른 내가 있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어딘가로 떠나가려는 나와

떠난 후엔 이내 가족과 집을 그리워하는 나..

둘 중 어떤 것이 나의 본 모습인지는 알지 못하며

그 둘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내 안에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족을 그리워하며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다.

 

직장을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월요병을 앓듯

장거리 트럭운전이 직업인 나의 운행 첫날은 항상 피곤하다.

아내가 싸준 십여일 치 음식과 옷가방, 노트북

그리고 한동안 독학으로 연습하다가 지금은 조금 시들해진

색소폰을 트렁크에 싣고 회사로 나온다.

차량 점검을 마치고 배차계에게 일정표 봉투를 건네 받는다.

캐나다에 온지도 벌써 6년이나 되었지만 그저 그런 나의 영어로는

배차계가 건네는 농을 받아주지 못해 서로가 멋적다.

(첫 회사에서 나의 별명은 Serious Guy였다.

상대가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니, 난 무슨 중요한 말인가 하고

귀를 쫑긋하며 알아들으려 애썼다.

그 들은 이내 웃는 얼굴로 뭐라뭐라하며 떠들었지만

난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모든것이 준비되면 드디어 시동을 걸고 길을 나선다.

 

요즘은 운전이 즐겁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와 온통 눈으로 덮혀 볼것 없던 산과 들이 푸르름으로 바뀌고

마치 거대한 동물원같이 길섶에서 땅을 파며 뭔가를 찾는 어린 곰이나

크기가 말과 같은 무스라는 사슴과, 마치 검은 장화를 신은것 같은 귀가 큰 여우,

중개(中犬) 만한 코요태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늑대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로키산맥을 넘을 땐 길을 건너는 산양 무리나 앨크사슴을 볼 수도 있고,

이른 아침 두터운 외투를 뒤집어 쓴듯한 버팔로의 콧김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새 황량한 서부를 달리는 카우보이가 되어있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꼬부랑 말의 컨츄리송이 아니라

귀에 익은 목소리.. 나훈아님의 '머나먼 고향'이다.

문득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생각이나 코끝이 찡해지고 시야가 흐려진다.

대쉬보드에 놓여진 휴지를 뽑아 코를 풀고는 엉뚱하게도

'운전중엔 역시 트로트가 최고야!'라고 생각한다.

순간 카우보이는 온데 간데 없고

유리창에 불혹을 넘긴 나그네가 씨~익 웃는다.

 

有朋(유붕)이 自遠方來(자원방래)하니 不亦樂乎(불역락호)아라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곳은 많다!!

위니팩(Winnipeg)에 사는 언제나 반겨주는 형님들,

미네아폴리스(Minneapolis)에 사는

오리지날 광주 더블빽 출신인 운전 30년 경력의 형님,

뉴저지(New Jersey)에서 만난 고향 선배,

무스자(Moose Jaw)에서 열심히 사는 친구들,

애드먼튼(Edmonton)에 사는 연예인 가족 동생네..

(이승기 아빠최진희 엄마이효리 딸)

그리고 L.A 사는 30년만에 만났던 초등학교 동창..

어느 누구 반겨주지 않은 이 없으니

내가 세상을 제대로 살고 있음이라 믿고 싶다.

그들과의 만남 그리고 기울이는 술잔..

이 또한 내 삶의 원동력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트럭을 세울만한 곳을 찾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발신번호를 보니 한국이다.

한국 시간으로 자정을 넘긴 시각에 술이 얼큰해진 친구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수화기 너머로 약간은 혀가 풀린듯한 친구의 음성이 들려온다.

"친구야! 보고싶다..."

그 한마디에 내 가슴은 또 먹먹해진다.

친구의 목소리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삶 또한 녹녹치 않지만 힘없는 친구의 목소리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몇 년 후 만나는 날까지 힘내서 열심히 살자..

그리고 건강하자.."라는 위로의 말로 친구와의 통화를 끝낸다.

전화통화 후 입맞이 떨어진 나는 점심을 쓴 커피 한잔으로 때우며

시동을 걸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저녁 무렵 시골길을 지나다 거실 유리창 너머로 식탁에 둘러앉아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에 시선이 멈춘다.

이곳은 큰길을 따라 집들이 모여 있어 저녁 시간이면 집안이 휜히 보인다.

인도를 따라 산책하던 사람들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도 손을 흔들거나 목례로 답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인사나 악수가 '만나서 반갑습니다'가 아닌

'나는 당신을 공격할 의사가 없습니다'라는 의사 표현에서 비롯되었다니

조금은 씁쓸하지 않은가?

아무튼 평화로운 시골집 가족의 모습에서 내 가족을 떠올리며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자기야?"

"응, 나야. 별일 없지?"

"응, 저녁은 먹었어?"

"아니, 아직.. 이따가 운전 끝나고 먹으려고.. 애들은?"

"잠깐만..."

"아빠?"

"응.. 우리 공주님들.. 학교는 잘 다녀왔어?"

"응.. 아빠 언제와?"

"왜? 아빠 보고 싶어서?"

"응"

"이번 금요일 즈음..."

"아빠 빨리와~ 러뷰"

뭐 이런 내용의.. 어쩌면 무미건조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대화 내용이지만

이 전화 한 통이 나에게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준다.

가족과 집은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이는 내 마음의 등대이기 때문이다.

 

Home~ Sweet Home!

십 이삼여일 만에 집에 돌아온 나는 씻지도 않고 소파에 몸을 던진다.

잠시 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아빠~!"하고 소리치며 달려와 안긴다.

아이들과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애들은 숙제 핑계를 대며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다시 거실에 혼자 남겨진다.

노트북을 켜고 다음 운행 동안 들을 ‘여성시대’를 비롯한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이 다운로드 되는 동안,

밤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올 아내를 위해 싱크대에 있는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에서 연어를 꺼내 먹기 좋게 썰어 접시에 담아 놓는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현관을 열쇠로 따는 소리가 들린다.

지치고 피곤 할 터인데 아내는 식탁에서 나와 마주앉아 와인잔을 기울이며

지난 십여일 간의 일들을 시시콜콜 이야기한다.

어느새 아내의 말소리는 감미로운 발라드가 되어 내 귓전을 두드린다.

입안에 퍼지는 와인의 달콤 쌉싸름한 맛과 아내의 이야기 소리에

가슴 깊숙한 곳에서 조금씩 평온함과 행복감이 밀려온다.

 

나는 지금의 내 일이 좋다.

그래서 이 주말이 지나면 나는 또 하이웨이를 달리고,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을 그리워하며,

돌아와서 느낄 행복에 감사 할 것이다.


출처 : 길...
글쓴이 : 도랑모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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